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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10150 bytes / 조회: 566 / 2022.12.25 18:27
어느집 막내아들 (+ 엔딩 감상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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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진양철 회장은 다른 거 다 떠나서 외양만 보면 딱 故이병철 삼성 회장이라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

학부 때 전공 과제하면서 심심풀이 교양으로 해방 후 국내 재계를 주름잡았던 재벌 1세대 회장, 즉 창업자들이 낸 자서전을 몇 권 읽었는데 그중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건 故이병철 삼성 회장 자서전이었다. 여기서 내가 느꼈다는 '재미'는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로서 故이병철 회장의 선구안을 말한다.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의 필요성을 처음 느낀 건 1969년이었고 본격적으로 설계를 한 건 1971년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1970년 전후라면 동란이 끝난지 20년 밖에 안 됐고 온 나라가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해외 원조를 받고, 독일에 광부를 보내고, 중동에 건설노동자를 보내고 전국 각지에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에 이병철은 삼성의 향후 먹거리 사업으로 반도체 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반도체 사업을 구상하고 설계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삼성 공화국을 이룬 삼성 반도체의 토대가 된 거다.

이 회장의 자서전에서 놀랐던 두 번째 일화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박통과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는 일화였다. 

 

노파심에 덧붙이면, 

故이 회장의 선구안이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해외여행을 통제하던 그 가난한 시절에 이미 서구 선진국가들을 드나들며 경제, 사회의 흐름을 접할 기회를 가졌으며, 그 엄혹한 시절 청와대로 가서 박통과 茶 한담을 나누었다는 그사세가 놀랍다는 의미였다. 특권층이 향유했던 혜택이 미래를 살다온 인생 2회차 윤현우가 손에 쥔 조커와 다를 게 뭔가 싶은 거다. 그사세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로 이어진다. 오너의 생일잔치에 쓸 달팽이를 프랑스에서 가져오고 일본에서 와규를 가져오고 방송에서 보기 힘든 유명 가수가 잔치송을 부르고...

 

드라마로 돌아와서.

당연한 얘기지만 원작이 궁금해서 읽어봤다. 혹시 아직 안 읽었지만 나처럼 궁금해서 읽어보려는 분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 '문학'으로 읽기엔 문장력이 많이 부족하고, 서술은 한계가 보이고, 소설보단 스크립트 느낌이 더 강하다. 전자책 포맷에 최적화된 내레이션이랄까. 웹툰 제작자는 편했을 듯. 같은 이유로 대본을 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스토리는, 설정과 플롯 몇 가지가 원작과 드라마가 달라서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드라마를 보는데 딱히 시너지 효과는 없다. 한 예로, 드라마의 윤현우는 미혼이지만 소설의 윤현우는 마흔 살 기혼자인데 당연히(일반화는 아니지만) 캐릭터 성격도 달라진다. 인생2회차가 아니었다면 별볼일 없었을 주위 흔한 흙수저 아재라는 얘기.

 

종영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에 대한 소감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인생 2회차는 되어야지 재벌가와 맞장 뜨는 게 가능하구나 라는 거. 지난 회차에서 진성준이 이항재한테 '주인 대접 받고 싶으면 (재벌가 자식으로)다시 태어나라'고 한다. 진도준으로 태어난 윤현우를 소환하는 대사였다.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안 되고 미래를 함 살아 보고 와야 우두머리를 할 수 있으니, 이항재가 느꼈을 절망감이 이해가 간다. 어느 드라마인가 영화인가 그사세를 '정글'이라고 표현했는데 매우 적절하다.

 

-

요즘 웹소설 플랫폼에 연재되는 판무, 판로, 판타지를 먹여살리는 소재는 죄다 회/빙/환인데 이 소재가 키워드인 원작이 드라마로 방영된대서 궁금했다. 구체적으로 웹소설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말아먹은 개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가장 궁금한 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현재에서 만날 것인가인데, 일단 웹소 <재벌집 막내아들>은 윤현우가 진도준으로 빙의하는 시점에 윤현우는 존재하지 않는 걸로(윤현우의 부모에게 외동딸 하나 있는 걸로 바뀜) 처리했다. 걸림돌을 아예 치워버린 건데 한마디로 작가가 쉽게 간 거지. 이 설정에 할말많지만 안하겠다. '막내아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이 동네 국룰인갑다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반면 드라마 '막내아들'은 이 부분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고 넘어갔는데 그 이유가 '윤현우x 진도준에 빙의한 윤현우'를 위한 설정이 따로 준비된 것인지 궁금. 

 

근데 쓰다보니 시청자 눈에나 윤현우도 송중기, 진도준도 송중기이지 드라마속에선 두 사람의 생김새가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고보니 왜 1인 2역이지?

 

커뮤니티 댓글 등에 원작 찬양이 많은데 원래 장르판은 개취판이라 그러려니 한다만 나는 별로였다. 한마디로 라노벨 읽는 기분이었음. 드라마는 진양철vs진도준의 관계성이라도 재미었었지 원작은 먼치킨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답게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이어서 지루했다. 그냥 재미가 없음. 요즘 재미있는 회빙환 소설이 얼마나 많고 재미있는 기업 소설이 얼마나 많은데. 아, '막내아들'이 재미없다는 건 웹소설 한정이다. 웹툰은 안 봤으므로 모름. 

 

 

여기까지 ~14화까지 감상. 


여기부턴 15, 16화 감상

 

드라마 엔딩으로 커뮤 반응이 폭발적이다. 

재미있는 건 '스물다섯 스물하나' 때는 게시판에 원망이 쏟아지더니 '막내아들'은 분노가 쏟아지는 차이. 오랜만에 커뮤 자게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음.

 

이래서 타입슬립물이 어려운 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시공간 왜곡으로 차원을 이동하는 순간 타임 패러독스가 발생하기 때문. 그러니까 현재시점의 나는 과거의 나 or 미래의 나와 동시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패러독스가 발생하는데,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이브가 이브를 낳고 그 이브가 자라 존이 되어 이브를 만나 이브를 낳고, (그)이브가 자라 존이 되어 이브를 만나 이브를 낳고, (그)이브가 자라 존이 되어 이브를 만나 이브를 낳고.......의 무한반복으로 타임 패러독스에 갇힌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다.

 

드라마와 원작을 비교하는 글이 많은데 설정충돌이 개시망인 건 둘 다 도찐개찐이다. 원작은 진도준으로 빙의한 윤현우가 친부모를 찾아갔더니 윤현우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더라는 전개인데, 그럼 진도준에 빙의한 윤현우는 누구란 말인가. 그럴 거면 차라리 소설에 빙의하지 싶은데, 그럼 또 복수를 못 하니 그건 안 되고. 이래저래 설정은 찬란한데 개연성 말아먹은 서사는 초라하다.

 

원작의 이런 설정충돌은 무시한 채 '치밀하고 완벽한 원작을 드라마가 훼손 어쩌고저쩌고' 설왕설래하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렇다고 드라마 작가가 잘 했다는 얘기는 아니고. 진도준 빙의 시점에 윤현우의 존재를 아예 날려버린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윤현우의 존재를 남겨둔 걸로 보아 어쨌든 '윤현우 x 진도준에 빙의한 윤현우'의 패러독스를 풀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구운몽'에 꽂혀서 그렇지.

 

<막내아들> 16화 방영 전인 일요일 오전에 S와 드라마 결말에 관한 얘기를 잠깐 나누었는데 결론은 윤현우x진도준에 빙의한 윤현우가 현재 시점에 동시에 같이 존재하는 패러독스를 해결하려면 진도준 빙의 윤현우가 1화 전개대로 윤현우를 죽이고 빙의 시점과 현재 시점의 교차시점을 만드는 게 최선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선택한 엔딩은 윤현우가 진도준 빙의 윤현우를 죽이고 1화 시점으로 돌아가 총맞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가 일주일만에 깨어나더니 '1-15화 내용은 모두 아시발쿰'하더란... 뭐...

 

<막내아들> 엔딩으로 대한민국 드라마 시청자의 '아시발쿰 엔딩' 트라우마를 재확인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16화 방영 이후 작가와 제작진의 표정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작가와 제작진이 김은숙 작가의 '파리의 연인' 엔딩 인터뷰를 못 봤나 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절절한 인터뷰였는데. 그런들 이미 이렇게 된 걸 어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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