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다 'Nighthawks'의 등장에 반가워서 책갈피로 쓰는 엽서와 나란히 찍어봄.
이 많은 장점을 가진 의사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그가 요리할 때 사용한 주요 식재료는 인간이었다. 천재 식인 살인마의 이름은 한니발 렉터.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 15분 등장하고 전대미문 악역에 오른 캐릭터다. 영화 후반부 한니발 렉터는 경찰 2명을 살해한다. 이 거사를 치르는 동안에도 그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버리지 못한다. <골드베르크 반주곡>을 틀어놓고 피아노 선율과 살인을 동시에 응미한다. 18세기에 바흐가 작곡한 이 곡을 연주한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많다. 완벽주의자 한니발 렉터가 고른 버전은 또 다른 완벽주의자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pp.261-262
예술가와 예술가의 생에 긴밀히 관여했던 인물 33인의 연대를 '가볍게' 훑는 이 책은 매 챕터 도입부가 우아하다. 위에 인용한, 한니발로 시작해 '골드베르크 협주곡'으로 이어지는 도입부의 목적지는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인 것처럼.
저자의 직장이 수구꼴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사임을 생각하면 저자의 균형작힌 시각이 의외롭다. 당연한 걸 의외롭다 느끼는 게 비극이지만 어쩌겠나 시대가 그런 시대인 걸.
저자의 시각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여성주의 관점인데, 저자가 일종의 남성기득권자임을 생각하면 역시나 의외롭다. '페기 구겐하임'에서 응? 했던 의외로움은 '나혜석', '수잔 발라동'으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감탄으로 바뀐다. 이는 비단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예술가도 마찬가지인데 이걸 직업적 프로의식이라고 봐야 하는지, 개인의 선호로 봐야할지 판단은 어렵지만 어쨌든 독자로선 편안한 독서를 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와 저자의 목소리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 한 친구 K는 말러를 몹시 좋아했던 '말러리안'이었는데 나를 말러의 세계로 끌어들이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친구가 좋아하니 나도 좋아해보려고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걸 좋아하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왜 말러리안이 되지 못했을까. 나는 소위 "아무리 들어도 말러는 모르겠다"(p.26)에 해당하는데 저자가 그 이유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니까 '대위법 원칙을 따르며 수학 문제를 풀듯 한 치 오차 없이 악보를 그린 바흐.(p.26)'를 좋아하는 내 취향이 '전위적이고, 거칠게 표현하면 뒤죽박죽', '경계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p.28) 말러에게 소위 진입장벽을 세운 것이다.
아무튼 나는 말러가 여전히 어렵다. 말러는 내게 '불화', '전위'로 정의되는 작곡가다.
*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스피커에서 흐르는 배경음악은 저자가 책에 언급한 '교향곡 5번 4악장 - Addagietto'인데 '아다지에토'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등장한다.
이 책의 특징은 책을 읽는 동안 수시로 검색하게 한다는 거다.
재일건축가 이타미 준도 그 중 하나.
부모의 유지를 따라 평생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던 재일건축가 이타미 준의 본명은 유동룡으로 '이타미'는 오사카에 있는 이타미 공항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1968년에 건축학과를 졸업한 '유동룡'이 일본 사회에서 일을 얻지 못하고 주변을 부유했으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 가능하다. 그런 이타미 준의 첫 데뷔작은 시미즈에 있는 어머니 집이었다. 그래도 엔딩은 그만하면 해피하다. 상(award)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니지만 이타미 준은 이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고, 한국에선 '김수근 문화상'을 받았으며 일본에서도 최고 권위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일본 건축계가 외국인에게 이 상을 수여한 건 이타미 준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본에선 조센징으로, 모국에선 왜색이 묻은 건축가로 생 전반이 이방인이었던 건축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지어준 집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설계총괄 이타미 준 / ITAMIJUN
위치 : ShImizu, SHizuoka, Japan
대지면적 : 180.80m²
건축면적 : 102.10m²
사진 : 무라이오사무
흙, 돌, 나무로 건축을 한다는 이타미 준의 제주도 수풍석 박물관도 가까운 시일에 보고 싶다.
생소한 혹은 낯설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내가 건진 인물은 페기 구겐하임과 피나 바우슈인데 특히 피나 바우슈 편에선 '카페 뮐러', '피나'(다큐멘터리, 2011. 빔 벤더스)를 메모했다. 아울러 온라인서점 보관함에 담아둔 을유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에 '페기 구겐하임'도 추가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람의 관점이든, 사물이든 몰랐던 걸 알게 되고 배우고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기껍고 짜릿하다.